남평 문씨(南平 文氏) 도시조(都始祖) 시조 문다성(文多省) 중시조(中始祖) 기세조(起世祖) 문익(文翼) 조상 본 본관 파 종류 인구수 순위 뜻 한자 한문 유명인 인물 남평문씨 충혜공파 감천군파 남제공파 충익공파 판도판서공파 문익점(文益漸) 충선공파 헌납공파, 순질공파, 의안공파, 시중공파, 성숙공파
※ 유명인들의 인명별 영어 명언 https://cw2588.blogspot.com
필자는 한국의 성씨 본관별 현황(가나다 순 https://blog.naver.com/starlive33/223593683613 , 전체 순위 https://blog.naver.com/starlive33/223593727020 )을 정리한 사람입니다.
오늘은 남평 문씨(南平 文氏)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남평 문씨(南平 文氏)는 2015년(15년마다 실시되는데, 총조사 실시 100주년을 맞이하여 2025년에 인구주택총조사 실시 예정) 현재 445,946명으로 본관별 인구수 21위이다.
* 남평 문씨 대종회(大宗會) http://m-oo-n.com
남평 문씨(南平文氏)는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며, 시조 문다성(文多省)은 고려 삼중대광벽상공신(三重大匡壁上功臣) 남평백(南平伯)에 봉해지고 무성공(武成公)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았다고 한다.
文多省은 갓난아기 때 백제 미동부리현(未冬夫里縣)의 장자못이라는 연못가의 높은 바위 위에서 발견되었다는 전설이 있으며,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의 장자못가에 문암(文巖)이라는 전설 속의 바위가 남아 있다.
전설에 따르면 472년(백제 개로왕 18년) 미동부리현(未冬夫里縣) 동쪽에 장자못이라는 큰 못이 있었고, 그 못가에 천길 높이의 바위가 솟아 있었다.
하루는 군주(수령)가 그 바위 아래서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바위에 오색구름이 감돌면서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신기하게 여긴 군주가 사다리를 가져오게 하여 바위 위에 올라가 보니 석함이 놓여 있었고, 그 속에는 피부가 옥설같이 맑고 용모가 아름다운 갓난아이가 들어 있어 기이하게 생각하며 군주가 거두어 길렀다.
나이 5세에 문사(文辭)에 스스로 통달하고 무략(武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총명하여 사물의 이치를 스스로 깨닫는지라, 성을 문으로 하고 이름을 다성이라 칭했다고 한다.
그 후 삼중대광벽상공신(三重大匡壁上功臣)으로 남평백(南平伯)에 봉해지고 98세까지 살았다고 하여 후손들이 남평을 본관으로 하게 되었다.
대종회에서는 472년(백제 개로왕 18년) 탄생은 고려 개국공신이라는 족보 기록과 맞지 않아 후삼국시대로 정정하였다.
문다성은 태조 왕건 밑에서 무신으로 봉직하였으며, 고려가 후삼국의 통일을 이룬 후 삼중대광(三重大匡; 1품 1등위) 품계와 벽상공신(壁上功臣; 신흥사 공신당에 초상화가 올라간 개국공신) 및 남평백으로 봉작을 받고, 식읍 3천호를 하사받았다.
본관인 남평읍이 위치해 있던 나주시 일대는 태봉(泰封)의 장군이던 시절 왕건이 나주 공방전을 통해 직접 장악하고 근거지로 삼았던 지역인데, 문다성은 그때 왕건에게 호응했던 것으로 보인다.
시조 문다성은 역사적 인물이라기 보단 설화적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시조단을 만들어 종중에서 제사를 지내지만, 시조 밑으로는 자료가 없으므로 대수를 정할 때는 중시조 문익(文翼)부터 계산한다.
文翼은 숙종 대의 인물로 고려시대 문공원의 금석문에 등장하는 최초의 실존 인물이다. 문익의 아버지는 2군 6위 소속의 무관이었고, 문익은 중서문하성의 관직을 거쳐 문관이 되었으며, 시호(諡號)는 경절(敬節)이다.
문익의 아들인 문공인(文公仁)과 문공유(文公裕)가 문과에 급제하여 판상서병부사(判尙書兵部事)와 병부상서(兵部尙書)에 이르렀고, 손자 문극겸(文克謙)은 권판상서이부사(權判尙書吏部事)에 이르렀다.
이 기세로 무신정권 대에는 문벌귀족 가문 중 하나이기도 했다. 고려 때의 대표적 인물로는 무신정권 때의 충숙공 문극겸이 유명한데, 그분의 딸이 이의방의 제수(弟嫂)이다.
이의방(李義方)의 동생 이린(李璘)의 아내, 즉 문극겸이 장인, 이린은 사위이다. 이린과 문극겸 딸의 6대손이 이성계(李成桂)이다. 그리고 고려 말의 목화씨로 유명한 문익점(文益漸)도 남평 문씨이다.
현 제주도에 있었던 탐라국(耽羅國)의 최고 권력자인 성주(星主)를 세습하던 고씨와 연합해 성주의 권력을 넘보던 왕자(王子)를 세습하던 제주 양씨를 밀어내고 남평 문씨가 약 400년간 왕자를 세습하기도 했다.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제14권에서 제17권 그리고 씨족원류에 따르면, 제주 고씨는 탐라에서의 지위를 지키고자 재상이자 상장군이었던 문극겸에게 지속적으로 접촉하였고, 문극겸의 아들들인 문후식, 문유필 때 되어서야(고려 고종시기) 군사를 보내어 제주 양씨를 축출하고 제주 고씨는 탐라의 서쪽, 남평 문씨는 탐라의 동쪽으로 함께 권력을 분점했다.
그 결과, 제주 고씨는 고려의 중앙정부와 연줄을 대고, 지속적으로 성주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고, 남평 문씨는 약 400년간 탐라의 동쪽을 안정적으로 통치할 수 있었다.
다만 조선조 때에는 별로 가세가 흥한 편이 아니다. 1406년 문가학이 역모를 꾀해서 그런지, 조선조 때의 유명한 인물을 찾아보려면 대충 의병장이니 그저 그런 관료가 나올 정도다.
아마도 현 족보상 대단히 중요한 위치에 있는 문익점이 여말선초에 고려 라인을 타다가 배제당했던 듯하다.
문다성의 아들 문탁(文倬) 이후의 세계(世系)가 불분명하여 1731년 장흥 월천서원에서 발간한 남평 문씨 최초의 족보인 신해보에서 문익(文翼)을 기세조(起世祖)로 하였고, 이후 최초의 합의된 대동보에서도 중시조(中始祖)인 문익을 1세로 하여 세계를 정리하였으며 최신의 대동보도 이를 따르고 있다.
남평(南平)은 백제의 무진군(武珍郡) 미동부리현(未冬夫里縣)이었는데, 백제 멸망 뒤에는 당나라 웅진도독부의 대방주(帶方州)에 속했다가 남북국 시대 때 무진주(武珍州) 미동부리현(未冬夫里縣)이 되어 지방 군사 조직인 10정 중 하나인 미다부리정(未多夫里停)을 두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년) 무주(武州) 현웅현(玄雄縣)으로 고쳤다.
940년(고려 태조 23년) 나주(羅州) 남평현(南平縣)이 되었다.
983년(고려 성종 2년) 십이목(十二牧)이 설치될 때 나주목(羅州牧) 남평현(南平縣)이 되었다.
1390년(고려 공양왕 2년) 주현에서 격하되어 화순현에 속현으로 편입되었다.
1394년(조선 태조 3년) 다시 주현으로 승격시켜 감무를 두었고, 1413년(조선 태종 13년) 감무가 현감(縣監)으로 바뀌었다.
1895년(조선 고종 32년) 나주부 남평군으로 승격되었다.
1896년 전라남도 남평군이 되었다.
1914년 나주군에 병합되어 남평면이 되었다가, 1995년 3월 나주시 남평읍으로 승격되었다.
1993년 시조의 탄강지인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면 풍림리의 문바위 옆에 설단하고 매년 3월 20일 단제를 모시며, 장연서원에 배향하여 9월 중정일에 유림에서 제향을 올리고 있다.
분파(分派)는 1세 문익(文翼), 2세 문공유(文公裕), 3세 문극겸(文克謙)으로 이어오다가 4세손부터 갈라져 11세손까지 10파로 나뉜다.
큰 줄기는 중시조 문익의 손자인 문극겸의 두 아들 대에서 갈라진다.
장남 문후식의 후손들로 구성된 파는 충혜공파ㆍ감천군파ㆍ남제공파ㆍ(충선공파)헌납공파ㆍ(충선공파)순질공파ㆍ(충선공파)의안공파ㆍ(충선공파)시중공파ㆍ(충선공파)성숙공파이다.
충선공파가 붙은 파는 전부 10세손 문익점의 후손이다.
충혜공파는 문익점의 형인 10세손 문익겸이 파조이고,
감천군파는 9세손 문구에서 갈라졌다.
남제공파는 문극겸의 손자인 5세손 문착을 파조로 한다.
문극겸의 차남 문유필의 후손들은 충익공파ㆍ판도판서공파이다.
원래는 저 둘을 통틀어 순평부원군파로 분류하였으나, 1995년 대동보에서는 파주와 전주가 집성촌인 9세손 문달한의 후손을 충익공파로 하고 합천지역이 집성촌인 8세 문근의 후손들은 판도판서공파로 분리하였다.
지금은 많이 잊혀진 이야기이긴 하지만, 남평문씨는 순흥안씨랑 혼인을 꺼린다. 옛날 문씨 청년이 중국에 유학을 하러 가는 길에 순흥안씨를 만나서 길동무 삼아 같이 가게 되었는데, 두 청년이 너무나 죽이 잘 맞았던지 의형제를 맺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형제니 한 집안과 같다!’ 라고 하여 후손들의 배우자 후보 가문을 하나 지워버린 전설적인 이야기가 전해진다. 지금도 각각의 가문 어르신들에게 자주 전해듣는 전설이기도 하다.
근세(近世)의 남평 문씨(南平 文氏) 유명인으로는 문근영(연예인), 문무일(전 검찰총장), 문성근(배우), 문선명(통일교 창시자), 문소리(배우), 문세광(육영수 여사 저격범), 문용린(전 서울시 교육감), 문익환(목사), 문정복(국회의원), 문정인(전 세종연구소 이사장), 문재인(전 대통령), 문창극(언론인), 문태준(전 보건복지부 장관), 문형태(전 체신부 장관), 문희상(전 국회의장) 등이 있다.